http://www.clebus.com

(사진출처 : 연극 '늙은 자전거' 공식 홈페이지>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게 되는, 그래서 그 부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후회와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이름. 가족.

유일한 가족이던 아버지가 객사하고 보육원으로 가게 될 처지가 된 아이 풍도. 가족이라고는 아버지 밖에 모르던 풍도는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무원의 손에 이끌려 산꼭대기 판잣집으로 향하는 길. 할아버지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찾아간 그 곳에는 자전거에 잡동사니를 가득 싣고 장터를 떠돌며 살아가는 강만이 있었다. 오랜 시간 아들과 의절하고 살아온 강만은 풍도를 듣도 보도 못한 아이라며 매몰차게 내친다. 공무원은 피도 눈물도 없는 할배라며 보육원으로 돌아가자고 풍도를 이끈다. “할배! 할배!” 목이 터져라 부르는 애절한 외침에 결국 강만은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연극 <늙은 자전거>는 영화 약속, 와일드 카드, 아홉 살 인생, 신기전, 포화 속으로 등의 시나리오를 쓴 이만희 작가의 신작이다. 장돌배기 할아버지와 사고뭉치 손자의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으로 풀어 낸 이 작품은 2010년 1월 22일 초연 이후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관객들이 처음 풍도를 만나면 어린 아이가 연기를 참 잘 한다며 감탄하곤 한다. 풍도 역을 맡은 이지현 씨는 연극과 뮤지컬계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배우다. 풍도의 정체(?)가 10대의 어린 소년이 아닌 30대의 여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건들거리는 걸음, 짖궂은 장난과 표정은 ‘사고뭉치 소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자장면이 먹고 싶다며 룸살롱 전단지를 뿌리다 경찰서에 끌려가질 않나, 자전거 모터 바꾸려고 꼬불쳐 둔 쌈짓돈을 몰래 훔쳐 도망가지를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넉살좋게 들이대는 풍도와 그런 풍도에게 쌀쌀맞게 대하면서도 내치지는 않는 강만의 모습에 객석은 웃음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행복한 날들도 잠시. 헤어짐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온다.

“제발, 며칠만 더 살게 해 주소. 내 저놈아한테 할 얘기가 좀 남아 있습니더.”

어색하게 손을 모은 강만의 기도는 가슴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홀로 남을 풍도. 아무것도 모른채 신난 아이를 바라보는 강만의 눈빛이 처연하다. 자신의 자전거를 물려주며 물건 값이며 떼오는 곳이며 하나 하나 가르쳐 주는 강만. 자신도 잘 안다며 으쓱이는 풍도에게 별일 아는 듯 다시 한번 말해 주는 모습에서 결국 숨죽인 눈물이 흘렀다. 멋지게 망토를 두르고 선글라스를 낀 풍도는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강만을 실은 자전거는 풍도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강만은 떠나고 풍도는 남았다. 풍도에게서 할아버지는 떠났지만 함께 나눈 추억은 남았다. 풍도의 마음 속 할아버지의 늙은 자전거가 멈추지 않는 한 풍도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