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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이 보입니까?

빛이 밝다는 것은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그 어둠속에서 밝은 빛으로 나오는 그 순간의 전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서울에 단 한 곳 존재한다. 그곳은 바로 신촌의 버티고 타워에 마련된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전시 체험 장이다. 이것은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150개 도시에서 6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전시다. 100%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이 전시는 시각장애 체험뿐만 아니라, 시각을 제외한 남은 감각의 활용과 더불어 관람객이 최고의 경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신개념의 종합 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2010년 1월, 네이버와 NHN social Enterprise의 주최로 드디어 한국에서 막을 올렸다.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보다(Switch off the sight, Switch on the insight)라는 부제를 가지고 사람들을 어둠 속으로 초대한다. 특별한 광고 없이 인기를 얻고 있는 ‘어둠속의 대화’를 이번 4월 호에서 기자가 직접 체험해보았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을 수 있는 정도의 스포일러 포함.)

어둠 속에서의 첫 발자국

먼저 이 전시는 총 90분으로 진행된다. 8명이 한 조가 되어 이동하기 때문에 사전 예약은 필수다. 모르는 사람들과 일행이 되어도 전혀 걱정할 건 없다. 전시장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만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혼자 체험하러 오는 사람도 종종 보였다.

어둠속에서 진행되므로 어떠한 물품도 소지할 수 없다. 핸드폰은 물론이거니와 야광 초침이 있는 시계도 예외는 아니다. 갑자기 어둠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 외로 긴장이 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보는 것’에 익숙해있다. 들어가기 전 앞서 의자에 앉아 미리 눈을 감아 보며 어느 깊이의 어둠일까 추측해보았건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가방과 핸드폰 등의 소지품을 사물함에 넣은 채, 한 팀이 된 일행들과 들어가기 전 어두컴컴한 방으로 이동했다. 스텝이 화이트 케인(시각장애인들의 지팡이_그들의 눈이 되어준다)을 하나씩 나눠주며 이곳도 꽤 어둡죠? 라고 묻는다. 하지만 90분의 체험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이곳의 빛조차 얼마나 밝았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커튼을 열고 들어가자 일행을 인솔할 김선민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린다.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당신의 시력은 무용지물이다. 마스터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이제 완전한 ‘어둠’ 그 자체에 들어선다. 일행끼리 체험을 하는 동안 편해질 수 있도록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사를 하면서 일행들의 얼굴을 떠올려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들어오기 전에 분명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시력이 ‘기억’까지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던 것이다. 이제 당신은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에만 의지하게 될 것이다.

숲 속에서부터 카페까지

눈을 감으나 뜨나 ‘어둠’의 깊이는 똑같기 때문에 오히려 눈을 감는 것이 편하다. 의식적으로 눈을 계속 뜨려고 하면 나중에 피로감이 확 밀려온다. 마스터가 그대로 벽이 끝나는 지점까지 천천히 걸어오라고 말하자 우리 일행은 처음 만져보는 화이트 케인으로 땅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아 주춤하게 된다. 일행의 맨 끝에 있던 기자는 일행들의 화이트 케인 소리가 멀어진 것이 느껴지자 순간 급해지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리고 있을 때, 마스터의 손이 먼저 다가왔다. 마스터는 신기하게도 자신이 맡은 일행 개개인을 다 기억하고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뒤에 오는 일행이 느리면 기다리고, 먼저 가는 일행이 빠르면 멈추게끔 한다. 기자가 헤맬 때마다 마스터는 기자의 이름을 부르며 위치를 정확히 짚어냈다.

들어가서 잠시 걷게 되면, 이제 당신은 전시장 바닥의 느낌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장소인 숲 속 공원이다. 사각거리는 잔디를 밟으며 손을 뻗어보면 심어놓은 진짜 나무를 만질 수 있다. 이 전시는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변 사물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공원의 나무 의자에 앉은 당신의 귀에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릴 것이며, 얼굴 위로는 시원한 바람이 스칠 것이다. 이곳에서 바로 당신의 감각들을 처음으로 깨우게 된다. 평상시에 느끼지 못했던 사소한 소리까지 듣게 되며, 표면의 꺼칠함도 금방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들어올 땐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던 일행을 옷만 만지고도 누구인지 알게 된다. 또한 걷는데 익숙지 않기 때문에 앞서 나가는 일행을 손으로 자꾸 만지게 된다. 기자는 누군가의 팔을 계속 만졌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기자의 등을 계속 더듬었다. 시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손’이 눈을 대신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슴으로 새롭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다.

숲 속을 지나서 여러 가지 공간으로 하나씩 이동한다. 당신은 강에서 보트도 타게 되며, 시장에도 놀러간다. 시장에 가서 여러 군데의 가판대를 둘러보며 구경을 한다. 이때 당신은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스파게티 면을 만지면서 라면이라고 말한 일행도 있었고, 기자는 좋아하는 옷가게에 갔지만 맘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없었다. 색깔과 형태를 완벽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의 말소리는 일상과 똑같이 재현하였지만, 일행 모두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다고 여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각과 촉각은 특히 예민해진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두근거리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할 것이다. 기자한테 제일 무서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길을 건널 때였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도중이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신호등에 달려 있는 ‘시각 장애인용 안내 버튼’을 누르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라는 안내 목소리가 들렸다. 화이트 케인으로 땅을 짚던 기자가 아직도 길거리인 줄 알고 빨간불임에도 길을 건너려 하자 마스터가 팔을 잡았다. 그 순간 거세게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아찔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분명 이 곳은 전시장이며, 실제로 달리는 자동차가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시력’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청각에 의지하던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카페에 도착하면 조용한 방으로 안내받는다. 그곳은 일행들이 ‘마음의 대화’를 나누며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길 것만 같던 90분이 벌써 다 지나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각이 없어지자 시간 감각마저 점차 흐려진다. 실제 시각장애인들도 경험으로 미루어 하루 시간을 가늠하게 된다고 한다. 정보로만 접할 수 있던 사실들을 몸소 체험하고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공감능력을 일깨워주는 이 전시는 실제로 6000명의 시각장애인의 고용을 창출해 냈다.

이 전시를 체험했던 관람객의 98퍼센트가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고 꼽았으며 그 중의 절반은 가족 및 지인들에게 추천했다. 특히 마지막 소통의 순간은 시각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면서 그들의 생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마스터의 말에 의하면 시각 장애인들의 꿈에는 색깔과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은 애초에 ‘볼’수가 없기에 꿈을 꾼다 하더라도 ‘시각적’이라는 감각이 아예 없으며 후천적 시각 장애인의 경우에는 맨 처음엔 컬러의 꿈을 꾸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색깔이 사라진 흑백의 꿈을 꾸고 그 다음으론 이미지가 삭제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 할 수 있는 것이다.

90분간 기자를 이끌어 주었던 ‘김선민’ 로드 마스터는 마지막으로 ‘시각 장애인들에겐 이런 기회조차도 소중합니다. 이런 기억이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네요.’라고 밝혔다.

기사를 잘 읽어보면 눈치 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작은’ 반전은 일부로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귀중한 기회를 스스로 체험한 뒤,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면서. 또한 다시 밝은 빛으로 걸어 나오는 자신의 모습에 감사해할 수 있기를.

<어둠속의 대화> 전시 소개.

관람시간| 화, 수, 목, 금| 12:00 - 20:30

              토, 일 10:00 - 19:00 | 월요일 휴관

위 치     | 신촌 버티고(VERTIGO) 9층

티켓가격| 성인 30,000원

              청소년 20,000원 | 취학아동 입장가능

              관람인원1Tour 8명

소요시간90분

예매방법| 인터파크, 현장구매 가능

공식예매| 인터파크 전화예매 1544.1555

단체예매| 02.313.9977

문  의    | 02. 313.9977

본 전시는 매 시간 15분 간격으로 8명이 입장하는 <소수인원투어>방식으로 진행된다.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후 관람이 가능하니 예매시간 15분 전까지 전시장 도착은 필수.

본 기사는 <담아내기> 4월호에 실린 것과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