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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 웃고 울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칭찬 받은 기억이 거의 없지만 유독 군대에서 들었던 칭찬은 잊혀지지 않는데 그 몇 안 되는 칭찬 중에 하나는 '어쭈~너 글씨 좀 쓴다' 는 말이었다. 물론 글재주가 좋다는 말은 아니었고, 보기에 좋다는 말이었다. '아...아닙니다!' 라고 황급히 말했지만 참 듣기 좋은 칭찬이었다.

군대에서 평생 쓸 편지를 다 썼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많이 썼다. 지금에 와서 보면 참 별별 소리다 해댔구나 싶어 얼굴이 다 붉어진다.

한번은 훈련병 때, 평소 알고 지냈던 여동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아이의 편지가 어찌나 기다려지던지 언제 오나 하는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지가 거의 1주일이 다되어 갈 때 쯤. 드디어 내 앞으로 편지가 왔다.

기대감에 부풀어 봉투를 뜯고 접혀있던 편지지를 펼치자마자 나는 헛웃음과 함께 편지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아이에 대한 모든 이미지가 싹둑싹둑 짤려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정떨어졌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그 정도로 충격을 먹은 이유는 바로 그녀의 글씨가 보통 악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미친 듯이 편지를 아무리 많이 썼어도 그녀에게 만큼은 절대 보내지 않았다.

이 정도로 글씨는 정확히 말하면 글씨의 모양, 힘의 강약 조절, 기울기, 띄어 쓴 정도, 공간 및 여백의 활용 능력(박지성은 글씨를 잘 쓸까?)은 그 사람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다.

서체가 이미지를 만들고 또...

서체가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관점을 잘 되새겨 보자. 글이 사람을 감싸고 있는 표피를 형성할 수 있다면, 글은 또한 상품의 겉도 감싸줄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캘리그래피는 이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상품을 브랜드화를 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이상현 작가의 필모그래피

-위에서 아래순-

'타짜, 혈의누, 아라한 장풍대작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동방신기(동방의 투혼), 박지헌, 춘자

이 밖에도 출판물, 식품, 주류, 주방용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이상현

캘리그래피

몇일전, 홍대 소노팩토리에서 이상현 작가의 글씨전이 있었다. 그리고 '붓을 잡은 연기자'라는 타이틀의 세미나를 통해 이작가를 만나 보았다.

이작가의 말을 빌어보면, 캘리그래피의 어원은 아름답게 쓰다라는 뜻으로

kallos(beauty)+graphy 즉, 아름다운 필적, 서예, 능시를 의미한다. 캘리와 서예와의 차이는 작가정신의 유무인데 캘리는 그것이 없다. 단지 한 대상을 투영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캘리는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쳐가는 효과, 여백의 균형미 등 순수 조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서는 서예와 회화가 거의 구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달하였는데, 서양에서는 실용적인 면에서 글씨체를 중시한 중세에 발달하다가 르네상스 이후 회화 분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으나, 20세기 들어 부활하였다.

'붓을 잡은 연예인'

영화 타짜의 홍보 포스터를 제안 받을 때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2주일 정도였으니까. 이미 원작 만화를 본 상태여서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고 작업을 하는데 이게 웬걸. 잘 나오지가 않았다.

왼손으로 써보기도 하고 칡뿌리로 써보기도 하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느낌이 살지 않았다. 결국 하우스(도박장)으로 갔다. 한판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오가는 판이였다. 그 당시 수중에 돈이 얼마 없는 때라 10분도 안되어 다 잃었다. 정말 잘 치더라.

사정해서 1시간 동안 아무짓도 안할 태니 보고만 있게 해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 있었다. 조용히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과 또 한판 벌였다. 이번엔 점 100원으로. 잃고 따기를 반복하다 가장 좋은 패가 손안에 들어온 순간 눈이 번뜩였다. 표정관리가 안되 죽는 줄 알았다. 직원 한 녀석이 '미안 합니다~' 하면서 돈에 손을 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잠깐!' 이라고 외치는 것 이였다. 바로 이 느낌 이였다. 얼른 붓과 먹을 가져와 그 느낌을 살려 썼다.

'타짜'

'붓을 잡은 연예인' 이상현 작가 무명시절 부터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 까지 과정을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순수함을 바탕으로한 오기와 자존심으로 어둡고 긴 터널을 뚫어낸

 '이작가'의 열정적 에너지에 감탄하였다.

-세미나 중인 이상현 작가- ⓒ김동식

순수한 감정이 이끌어 내는 가치

이 작가는 감정이입이 없는 글씨는 죽은 것과 같다면서 또 다른 예를 들었다.

이번에는 00출판사에서 표지를 제안 받았는데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였다. 근데 오랫동안 글을 업으로 삼은 터라 아무리 써도 어린이의 시각에서 나오는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왼손으로 써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마침 명절이 다가오고 있어 조카녀석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때 아닌 받아쓰기 경연장을 만들었다.

'자, 삼촌이 하는 말 따라 적어~ 딸~기' 받아적은 글을 보고 물었다. 'ㄹ' 을 왜이렇게 크게 적었니?' 묻자 조카녀석 하는 말, '삼촌이 따~아~ㄹ 기 했잖아~'

아이들은 내가 말하는 것 하나하나의 악센트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대로 옮겼다. 이거였다.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신을 비우는 것. 그렇게 생겨난 작품이 '한글 깨치기'였다.

캘리, 이모그래피

이 밖에도 다양한 분야의 작품, 그에 관한 뒷 이야기들을 현장감있게 전하였다.

가수 성시경, 춘자 등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였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여기에 풀 수는 없어 아쉽다.

중요한 것은 이작가는 작품제안이 들어오면 꼭 그 사람 혹은 대상물과 직접 부딪혀 보고 이미지와 느낌을 잘 감지해내 작품에 반영시킨다는 것이다. 만약 가수의 표지제안이면 해당 가수를 직접 만나고 또한 음악도 계속 듣는다. 또한 그 대상이 음식이면 몇날 몇끼를 계속 그 음식만 먹는다. 느낌이 올 때 가지 계속.

이러한 과정이 수반 되기 때문에 어떤 캘리그래퍼는 이모그래피 Emography

(Emotion+graphy 의 합성어) 즉, 감정을 담은 캘리그래피라고 까지 표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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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획기사는 캘리그래피의 무긍무진한 활용가치에 대해 논해보겠습니다.

-이상봉 그리고 캘리그래피와 한글옷 김연아?-  ⓒ올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