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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Egon Schiele)

“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하지만 난 나의 훌륭함이 참 마음에 듭니다. “

- 에곤 쉴레.

쉴레의 작품은 거칠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가 장식적이며 부드러운 표현을 즐겼던 반면, 쉴레는 삶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듯한 절규에 가까운 인물상을 그렸다. 클림트의 그것보다 훨씬 더 도발적이다. 그의 그림들에는 여성의 체모가 적나라하게 들어나거나 심지어 수음을 하고 있으며, 그런 자신을 어쩔 수 없이 훔쳐보게 되는 관람자들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본다.

엄격한 부친과 냉담한 모친 사이에서 조숙한 소년으로 성장한 그는 16세가 되던 해에 비엔나 미술학교로 진학하여 특별한 재주를 보였으나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교육자들은 그의 재주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는 중도에 학교를 포기하고,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접근한다. 클림트는 그의 재능을 매우 높게 평가하였고, 이후 쉴레는 클림트의 막대한 영향아래 성장한다.

그는 그의 스승인 클림트가 에로티시즘으로 포장한 것을 ‘적나라하게’ 보이며 클림트도 결코 갈 수 없었던 영역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비엔나 사람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현실과 꿈의 간극 속에 감춰진 불안과, 중산층 부르주아들의 허위의식을 파헤쳐냈다.

성적인 이미지를 이용하는 근간의 현대작가들과 쉴레의 예술세계는 완연히 다르다. 쉴레의 미학은 훨씬 복잡하고 세련되었으며, ‘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아름답게 그려진 쉴레의 인물 형상은 단순히 에로틱한 것이 아니라 시각적, 미학적으로 하나의 이상화된 이미지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오스카 코코쉬카(Oskar Kokoschka)와 함께 가장 뛰어난 오스트리아 화가로 꼽히는 그는 금세기가 열리던 처음 10년간 비엔나에서 보여진 개인적, 심리적 현상 및 지적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본질의 탐구와 당시의 지적인 틀 안에서 개성의 내부구조를 탐색하는 것이 비엔나 제국 말엽의 퇴폐와 위선과 함께 쉴레의 작품이 되었다.

그는 어린 소녀들의 누드 드로잉을 그렸고, 그림 속의 어린 소녀는 미처 성숙하지도 않은 자신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들춰 보이고 있다. 1912년 4월, 쉴레는 어린 소녀를 유혹하고 아이들에게 에로틱한 그림들을 보여 그들을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의 아뜰리에에 걸려 있는 드로잉 한 점이 ‘청소년을 유혹하는 포르노물’이란 죄목으로 불태워졌고, 감옥살이는 그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모욕감을 남겨 그 후로 쉴레의 성격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에곤 쉴레가 살았던 시대에는 그 무엇보다 인간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예술 속에 표현되던 시대였다. 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는 당시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유럽에서 민족 구성이 가장 복잡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 대제국은 에곤 쉴레가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복잡한 민족 구성과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정치 체재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제국의 몰락을 앞둔 시민들은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고, 쾌락과 평온을 찾아 떠났다. 그들은 미술과 무대 예술에 열광 했으며 거리의 건축물들을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였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전 유럽의 성인 남자의 한 세대가 전멸하는 유럽 문명의 위기 속에서도 에곤 쉴레는 전혀 미동하지 않았다.

쉴레는 인간의 육체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표현했다 . 그가 그린 많은 누드 그림들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떠나서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 없이 육체의 긴장과 비극의 느낌을 마치 심령을 그려내 듯이 표현한다. 그는 인간의 진지한 눈빛을 강조했다. 그가 표현하는 에로스는 기쁨의 느낌보다는 긴장과 괴로움의 느낌을 표현한다. 그가 그린 풍경화에서 불가사의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도시들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의 그림들은 에곤 쉴레 자신이 느낀 것을 표현한 표현주의 그림이다. 그의 많은 자화상들은 그가 가진 예술가의 영혼과 그 자신, 그리고 자신의 육체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인이 있었다. 그의 모델이자 동거 애인이었던 발리 노이질(Wally Neuzil)은 도발적이고 요염했다. 원래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그녀는 쉴레에게 헌신적이었다. 집안 일은 물론이고 쉴레의 선정적인 누드 드로잉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심부름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에게 쏟아지는 성적 희롱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녀는 쉴레에게 에로틱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아는 여자였다. 그녀는 쉴레에게 억압되어 있던 성적 욕망을 분출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를 깊이 사랑했다. 하지만 그에게 물질적인 안락함을 줄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쉴레에게 버림받았고, 부르주아 철도공무원의 딸 에디스 함스(Edith Harms)와 결혼한 그를 떠났다.

겨우 스물 일곱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예술가 에곤 쉴레. 그의 그림 속에는 젊음과 죽음, 그리고 에로스의 향기가 짙게 베어 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약 300여 점의 회화들과 약 3000여 점에 이르는 드로잉을 남겼다. 마치 시를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들에는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제약 받지 않는 거친 예술가의 혼이 담겨있다. 시대적 불안 속에서 내면적인 고독과 욕망, 그리고 혼란이 뒤섞인 그의 작품들은 출세에 대한 욕망, 성적인 쾌락, 명성에 대한 갈증으로 둘러 쌓인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을 투영함으로써 깊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1912년 4월 옥중에서 그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Editor 임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