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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연극계의 새로운 트렌드라면, 단연 공연의 ‘브랜드화( 化)’와 이에 따른 스타캐스팅을 들 수 있다. ‘연극열전’ 시리즈가 그랬고, 이제는 ‘무대가 좋다’ 시리즈가 그 트렌드를 이어가고 있다. 개막작 [풀 포 러브(Fool For Love)]와 문근영의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모은 [클로져(Closer)]에 이은 ‘무대가 좋다’의 세 번째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프루프(Proof)]에 대한 신뢰는 충분했다. 게다가, 주인공 캐서린 역에 강혜정과 더블 캐스팅된 배우 이윤지의 연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감은 배가 되었다.   
 

   연극 [프루프]는 영화[뷰티풀 마인드] 속 실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이 작품에서는 ‘로버트’)와 그의 딸 캐서린의 갈등과 사랑을 담았다 .

    아버지 로버트의 천재성을 빼닮았지만, 정신병마저 물려받았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리는 캐서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뒤, 더욱 커진 두려움에, 그녀는 세상에 벽을 치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가 되어간다. 캐서린에게 사랑과 믿음이란 것은 존재하지않는 ‘허수’였던 것이다.타인 뿐 아니라, 자신의 자아에 대한 믿음마저도.. 
 

  로버트의 수학적 증명을 검증하겠다고 찾아온 아버지의 제자, 할에게도 캐서린은 불신과 냉소를 보인다. 그러나, 점차 할과 진정으로 소통을 하게 된 캐서린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던 비밀을 털어놓고, 그와 함께 ‘우아한’(작품 속 마지막 대사 인용) 천재성을 더욱 발전시킨다 .

캐서린에게 있어 ‘허수’였던 사랑과 믿음을 ‘실수( 實數)’로 바꾼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교감이었다. 이 세상을 바꾸는건, 천재의 수학적 증명보다 인간애와 믿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연극은 그 사실을 새삼 증명(Proof)한 것이다. 천재 수학자이기 이전에, 딸을 아끼고 사랑한 로버트의 부성애도 마찬가지이다.

  여성 연출가(이유리 연출)의 작품답게 [프루프]는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기-승-전-결의 뚜렷한 사건구조를 지닌 작품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 변화가 대사에 녹아들었다. 드라마로 치면, 김수현 작가의 작품처럼, 속사포처럼 빠르고 긴 대사들이 이어지는데, 인터미션도 없이 2시간 가까이 대사 및 모든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낸 배우들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특히, 이 작품을 보기 전에는, ‘배우’보다는 ‘탤런트’로 생각했던 이윤지의 섬세함과 과감함이 공존하는 연기력이 인상깊었다.
 

   섬세한 연출과 동시에, 적절한 반전도 즐길 수 있다. 사건이 아닌, 대화 위주의 연극이라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타이밍에는 적절한 반전이 나와서, 긴장감 있게 극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라면, 갈등 해결 과정이 조금 더 명확했다면, 작품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 [프루프]는 의미 있는 연극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연극이었다.
 그러나, 가벼운 로맨스와 코믹극의 홍수 속에서, 단비 같은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의 제대로된 정극이었다.